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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1374
한자 書徐東皐贈崔臺巖詩後
영어공식명칭 Lee Sangjung’s comments and reviews on poems written by Seo Sasun to Choi Dongzip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711년 - 「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이상정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81년 - 「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이상정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763년연표보기 - 「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저술
편찬|간행 시기/일시 1802년연표보기 - 「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간행
배경 지역 「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지도보기
성격 서발류|발문
작가 이상정

[정의]

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입향조인 최동집이 대군 사부로 심양으로 떠날 때 서사선이 써준 시 뒤에 쓴 발문.

[개설]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상정은 이황(李滉) 이후 기호학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된 영남학파에서 이황의 계승을 주창하고 일어난 이현일·이재로 이어진 영남학파의 중추적 인물이다.

[구성]

「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사선이 최동집에게 준 5언율시를 제시하고, 「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와 관련된 일의 전말과 배경을 발문의 체제로 설명하고 있다.

[내용]

「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는 서사선이 요동의 심양[현재 중국 랴오닝성 선양]으로 길 떠나는 최동집을 이별하면서 준 「송진중(送鎭中)」 뒤에 쓴 발문이다. 최동집은 효묘(孝廟)[효종]가 대군의 신분일 때 요동의 심양[현재 중국 랴오닝성 선양]으로 인질로 가게 되자 사부의 소명을 받고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송진중」는 바로 이때 지어졌다. 최동집이 효묘의 뒤를 쫓아갔으나 미치지 못하자 팔공산농연(聾淵) 가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은거하였다. 은거하면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울분과 성정의 발로를 시문으로 나타내었을 것인데, 안타깝게 화재로 인하여 최동집과 관련된 시문이 이 한 수(首)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최동집이 군주의 어려움에 자신을 던진 의리와 경서의 의리를 밝힌 공, 믿음을 실천한 덕업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후대에 선대의 가업을 계승하여 옛 집터를 중수하고, 그곳에서 자제들을 가르치며 선대의 가업을 계승하였다.

[특징]

보통 후(後)·발(跋)은 독자의 감상이 대부분인데, 「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는 시와 관련된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서동고증최대암시후」는 서사선이 최동집에게 준 「송진중(送鎭中)」 시의 해제 역할을 겸하고 있다. 평소 왕래하던 지인들에게 화답시를 청하여 이를 바탕으로 숨은 덕을 천양하게 하고 이를 기록물로 남기는 당대의 풍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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