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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신 집안의 효행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1339
한자 禹翊臣 - 孝行 -
영어공식명칭 A Tale of Filial Behavior of U Ik-si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도평로116길 194[평광동 97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9년 - 「우익신 집안의 효행 이야기」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3년 - 「우익신 집안의 효행 이야기」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수록
관련 지명 「우익신 집안의 효행 이야기」 - 대구광역시 동구 도평로116길 194[평광동 970]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우효중|우익신|우명식
모티프 유형 효행담|지조담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살았던 우익신의 12세손 우효중의 효행과 그의 자손인 우명식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글누림출판사, 2009)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문화원, 2013)

[내용]

우익신(禹翊臣)은 원래 현재 경기도 여주시에 살던 사람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난을 피해 아들과 손자를 거느리고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팔공산 남쪽 용암산 계곡에 도착하여 세거지로 삼았다고 한다. 우익신의 12세손 우효중(禹孝重)은 부친에 효도를 다하고, 3년간 시묘살이도 정성껏 하였다. 조정에서 그의 효행을 높이 사서 조봉대부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同知中樞府事)로 증직시켰다고 한다. 또한 우효중의 후손인 우명식(禹命植)은 구한말 때 국운이 기울어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묻혀 살았던 지조 있는 선비였다. 후손들은 우효중의 효행과 우명식의 지조를 추모하기 위해 1896년 ‘첨백당(瞻栢堂)’이라는 집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 첨백당은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모티프 분석]

「우익신 집안의 효행 이야기」는 우효중의 효행담과 우명식의 지조를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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