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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646
한자 李鍾岩
영어공식명칭 Lee Jongam
이칭/별칭 이종순(李鍾淳),양건호(梁健浩)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최용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 이종암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30년연표보기 - 이종암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이종암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묘소 이종암 묘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자
대표 경력 의열단 부단장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종암(李鍾巖)[1896~1930]은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이종암(李鍾岩), 이종순(李鍾淳), 양건호(梁健浩)로 불렸다. 대구농업학교를 중퇴하고, 열아홉살에 대구은행에 들어가 출납계 주임이 되었다. 1917년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은행 돈 1만 9000원을 가지고 만주로 도피하였으며, 그 이듬해인 1918년에 중국 지린성[吉林省] 퉁화시[通化市] 퉁화현[通化縣] 독립군 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학을 배웠다.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폭탄제조법을 익혔다. 이후 의열단을 조직하여 단원이었던 최경학(崔敬鶴)에게 폭탄을 가지고 국내에 잠입하게 하여 밀양경찰서를 폭파하려다가 실패하였다. 1920년에는 의열단 부단장직을 맡아 국내에 있던 일제의 각 기관을 파괴하고자 하였으나 사전 발각되기도 하였다. 1922년 3월 상하이에서 일본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衣一]를 저격하려다 실패하고 본인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후 탈출하여 1923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신임장을 휴대하고 군자금 모금차 밀입국하여 활동하던 중 대구에서 일본 경찰에 잡혀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묘소]

이종암의 묘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내 61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종암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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