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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314
한자 警防團[東區]
영어공식명칭 Gyeongbangd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9년 7월 3일 - 경방단 규칙 제정
성격 단체
설립자 조선총독부

[정의]

1937년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일제가 시행한 소방 조직.

[개설]

1939년 말 경방단의 전국 조직 상황은 경방단과 분교를 합쳐 2천7백53개 조, 단원 18만 1천2백21명 수준이었다. 이는 소방조가 해체되기 전해인 1938년 말의 소방조 1천3백93개조, 조원(組員) 6만 9천4백14명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수이다. 또한 경방단 설치와 동시에 방공 설비의 강화와 방공 사상의 철저한 보급 등을 위하여 조선방공협회(朝鮮防共協會)가 설립되었고, 경방단원의 제복이 제정되었다. 명령 계통은 도지사는 직권 또는 부, 읍, 면의 신청에 따라 경방단을 설치할 수 있었고 경찰부장 또는 경찰서장의 지휘에 따라 행동하였으며 긴급한 경우에는 부윤이나 면장 또는 단장의 지휘에 따라 행동하였다. 부윤이나 읍면장은 담당하는 방공 업무에 관하여 경찰서장과 협의하여 경방단을 지휘하였다.

[설립 목적]

대구광역시 동구는 일제강점기에 대구경찰서의 관할 아래 있었고,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을 계기로 유사시에 방공(防空)의 완벽을 기하여 치안을 확보할 목적으로 시행한 소방조직체였다.

[변천]

1939년 7월 3일에는 「경방단 규칙」을 제정·공포하고 소방조와 수방단을 해체하여 경방단으로 통합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방단의 임무는 소방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조선인을 일제의 지배 구조에 편입시켜, 일제에 협력하게 하는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일제가 전시 체제를 강화하면서 방공을 명분으로 조선인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감시의 목적이 주요하였다. 그러기에 사실상 효과가 없는 농촌 면 소재지까지도 경방단을 조직하여 전시적인 효과를 보이면서 일제 전쟁정책에 조선인을 동원하려 하였던 것이다.

[현황]

오늘날 대구광역시 동구 내 경방단이 설치된 지역은 동촌과 공산 일대이다. 동촌면의 경우 단장 용두일정(龍頭一正), 부단장 이장우(李章雨), 구보창일태랑(久保倉一太郞), 공산면의 경우 단장 김재수, 부단장 안위수, 이중기 등이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조직되어 활동한 경방단은 소방 임무를 명분으로 하여 일제의 전시체제 강화와 조선인의 동향 감시를 위한 전시동원체제 기구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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