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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369
한자 韓應烈
영어공식명칭 Han Eungryu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33년 - 한응렬 서우구락부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33년 - 한응렬 『남선경제신문』 기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한응렬 『매일신보』 기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한응렬 경북공론사 사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46년 5월 22일 - 한응렬 영남일보사 전무이사 취임
몰년 시기/일시 1949년 11월 15일연표보기 - 한응렬 사망
출생지 평양 - 북한 평양직할시
거주|이주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언론인
성별 남성
대표 경력 경북공론사 사장|영남일보 전무이사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언론인.

[활동 사항]

한응렬(韓應烈)[?~1949]은 평양에서 태어나 대구로 이주하였다. 1933년 10월 26일 서북 출신들이 조직한 서우구락부(西友俱樂部)에 참가하고 서기로 활동하였다. 1933년 『남선경제신문(南鮮經濟新聞)』 기자로 활동하며 조선인 기자들의 친목을 위하여 조직된 칠조회(七鳥會)에 참여하였다. 1935년에는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하였다.

한응렬은 1937년 경북공론사(慶北公論社) 사장에 취임하였고, 1938년 10월 25일 대구부청 출입기자들이 부정(府政)에 협조하기 위하여 결성한 ‘부정기자구락부(府政記者俱樂部)’에 참여하였다. 1939년 3월 4일 대구공회당에서 열린 대구기우회(大邱記友會) 주최의 생활개선좌담회에 경북공론사를 대표하여 참석하였다. 일제 말기에는 일어 신문인 조선상공신문사 경북지사를 맡아 운영하였다.

한응렬은 광복 후인 1945년 9월 전보인쇄소(電報印刷所)를 인수하였고, 1945년 10월 11일 2면으로 구성된 타블로이드 배판의 『영남일보(嶺南日報)』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영남일보』는 창간사에서 “건국성업의 초석이 되어 당파와 알력을 초월하고 삼천만 동포에게 진실한 보도전사가 될” 목적으로 창간한다고 밝혔다. 한응렬은 1945년 11월 1월 영남일보사의 대표 격인 총무 주석을 맡았고, 12월 1일 주간(主幹)이 되었다. 1946년 5월 22일에는 주식회사로 전환한 영남일보사의 이사가 되었다. 한응렬은 1949년 11월 15일 사망하였다.

[묘소]

한응렬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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