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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528
한자 金文輯
영어공식명칭 Kim Munjip
이칭/별칭 화돈(花豚),오에 류노스케,대강룡지조(大江龍之助),대강룡지개(大江龍之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재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7년 7월 7일연표보기 - 김문집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0년 3월 - 김문집 사립 희원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20년 4월 - 김문집 일본 도쿄시 와세다[早稻田]중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23년 4월 - 김문집 대구공립중학교 2학년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26년 3월 - 김문집 대구공립중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26년 4월 - 김문집 마츠야마[松山]고등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29년 9월 - 김문집 마츠야마고등학교 퇴학
활동 시기/일시 1939년 9월 - 김문집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촉탁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39년 10월 - 김문집 조선문인협회 간사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40년 - 김문집 사기·공갈·강제 외설·강간 미수·상해 등의 혐으로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41년 5월 30일 - 김문집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42년 4월 - 김문집 석방된 뒤 도일
출생지 대구부 - 대구광역시
거주|이주지 경성부 -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사립 희원학교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대구공립중학교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와세다중학교 - 일본 도쿄시
학교|수학지 마츠야마고등학교 - 일본 마츠야마시
활동지 경성부 - 서울특별시
성격 친일반민족행위자
성별 남성
대표 경력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촉탁|조선문인협회 간사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김문집(金文輯)[1907~?]은 지원병 제도를 선전하고 일본군에 지원하도록 조선 청년들을 선동하는 다수의 글을 발표하여 일제에 협력하였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가계]

김문집은 1907년 7월 7일 대구부 출생으로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부 남산정 470번지이다. 1941년 당시 거주지는 경성부 명치정 2정목 76번지이다.

[활동 사항]

김문집은 1907년 7월 7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1920년 3월 사립 희원학교(喜嫄學校)를 졸업하였고, 4월에 일본 도쿄시에 있는 와세다[早稻田]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학년을 수료한 뒤 다시 대구로 와서 1923년 4월 대구공립중학교 2학년에 입학하여 1926년 3월 졸업하였다. 1926년 4월 다시 일본으로 가서 마츠야마[松山]고등학교에 입학하였지만 졸업시험을 치르지 않아 유급하여 1929년 9월 퇴학당하였다. 이후 도쿄시에서 저술업에 종사하였다.

김문집은 일본 도쿄시에서 저술업에 종사하던 중 1935년 8월 19일 파렴치범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조선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조선으로 강제 송환 후 11월 3일 『조선일보』 지면을 통하여 평론 「장혁주 군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발표하면서 문필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문집은 1939년 9월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촉탁이 되었고, 10월부터 조선문인협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1939년 10월에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서 발행한 기관지 『총동원』에 발표한 「거무스름해진 혈서」라는 소설을 통하여 지원병 제도를 선전하였고, 조선 청년들로 하여금 일본군에 지원하도록 선동하였다.

1940년 김문집을 신고하는 투서가 밀려들자 경기도 경찰부에서 체포하여 조사하였다. 죄목은 사기·공갈·강제 외설·강간 미수·상해 등이었다. 1940년 7월 22일 「보안법」 위반 공갈 사건으로 경성지방검사국에 송치되었고, 1941년 5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일부 죄가 인정되어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김문집은 1941년 6월 2일 석방된 후 일본으로 도피하여 1942년 후쿠오카[福岡]일일신문사에 입사하였고, 일본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김문집은 1939년 3월 30일부터 4월 7일까지 『경성일보(京城日報)』에 「조선문단인에게-현실과 조선민족의 문제」를 연재하였고, 7월 16일에는 매일신보사의 『국민신보(國民新報)』에 「조국에 목숨 바친 최초의 반도 지원병-축하해야 할 죽음!-피에 산 우리의 이인석 군」을 발표하였다. 9월에는 『조광』 제5권 제9호에 「‘조선민족’의 발전적 해소론 서설-상고에의 귀환」을 발표하였고, 조선금융조합연합회의 『家庭の友』 제24호에 「여자다운 여자-조선부녀사회에 고함」을 발표하였다. 1939년 10월 7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총동원』 제1권 제5호에 「거무스름해진 혈서」를 발표하였고, 1940년 3월 7일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총동원(總動員)』 제2권 제3호에 「씨 설정을 주제로-반도풍습의 그 조국에로의 합리적 발전적 귀환을 납득시키는 말」을 발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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