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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잠업전습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351
한자 大邱蠶業傳習所
이칭/별칭 대구양잠전습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교 시기/일시 1903년 3월연표보기 - 대구잠업전습소 설립
성격 교육기관

[정의]

개항기 대구에 있었던 양잠 재배 교육을 위한 교육기관.

[잠업재배에 적합한 경상도]

경상도는 조선시대부터 잠업을 하고 있었으며, 대표적 지역은 함창·상주·문경이다. 경상도는 양잠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첫째, 양잠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서리·습기 피해가 거의 없었다. 둘째, 낙동강 연안 수백 리에 걸쳐 있는 황무지는 뽕나무를 키우기에 적합하였다. 마지막으로, 공기가 건조하여 누에똥을 제거하는 횟수가 줄어들어 노동력이 30%나 감소된다. 대구 지역 잠업 연구에 이바지한 이종국(李鐘國)이 유학을 간 일본 나가노[長野]와 군마[群馬] 역시 경상도의 양잠 재배 조건과 거의 유사하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배워 온 양잠 기술은 경상도 지역에 적합하였다.

[변천]

이종국은 서울 출신으로 4년 동안 일본 나가노와 군마에서 양잠을 연구하였다. 이종국은 귀국 후 대구에 와서 서상돈(徐相燉)을 비롯한 대구 유지들과 함께 1903년 3월 대구잠업전습소[대구양잠전습소]를 세웠다. 대구잠업전습소는 대한제국기 남한 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진 전습소이다. 대한제국 정부에서도 새로운 양잠법 보급과 양잠 교육을 위하여 대구잠업전습소에 연 600원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종국은 설립 당시 대구잠업전습소의 소장을 맡았다. 1905년에는 나가노 출신 일본인 시노하라 이마조[篠原今藏]를 사무원으로 채용하였다. 1908년 4월에 경성전습소 출신 일본인 고가노 세조[小智野淸藏]를 교사로 채용하였다. 대구양잠전습소서상돈 집안이 주로 경영하였다. 서상돈의 아들 서병조(徐丙朝)는 1909년부터 대구잠업전습소장을 역임하였으며, 1913년 서상돈이 사망하자 서상돈의 아들 서병조대구잠업전습소를 이어받았다.

[의의와 평가]

대구잠업전습소는 대구 및 경북 지역에서 새로운 양잠법 보급과 양잠 교육을 실시하여 경상도가 잠업 중심지로 성장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다량의 생사가 생산된 덕분에 1910년대 이후 대구 및 경북 지역에서는 제사 공업이나 면직 공업이 발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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