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415
한자 臨休寺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앞산순환로 12-25[상인동 1320]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921년연표보기 - 임휴사 창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811년 - 임휴사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930년 - 임휴사 3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4년 7월 12일 - 임휴사 방화
최초 건립지 임휴사 - 대구광역시 달서구 앞산순환로 12-25[상인동 1320]
현 소재지 임휴사 - 대구광역시 달서구 앞산순환로 12-25[상인동 1320]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영조대사(靈照大師)
전화 053-632-4844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

[개설]

임휴사(臨休寺)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末寺)이다. 921년(신라 경명왕 5)에 영조대사(靈照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전통 사찰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임휴사 창건 설화에 의하면,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王建)팔공산(八公山)의 동수대전(棟藪大戰)에서 후백제 견훤(甄萱)에 크게 패하고, 추격을 피하여 은적사에 숨어 있다가 안일사를 경유하여 임휴사 터에 임시로 군막을 치고 쉬어 갔다 하여 이름을 ‘임휴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임휴사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하는 자료가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그 뒤 1811년(순조 11)에 무주선사(無住禪師)가 중창하였으며, 1930년에는 포산화상(苞山和尙)이 다시 중창하였다. 1996년에 주지 혜담(慧潭)이 법당과 요사(寮舍)를 중창하였으며, 1998년에 주지 선봉(禪峰)이 요사와 화장실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2004년 7월 12일 새벽 방화로 1999년 완공한 132㎡의 대웅전과 23.4㎡의 산신각,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과 탱화 2점 등이 전소되었으며 반야당 일부도 소실되었다. 2008년 주지 현장이 대웅전을 복원 준공하였으며, 삼성각과 나한전 등을 순차적으로 복원하였다.

[활동 사항]

임휴사에서는 불교의 5대 명절인 석가모니의 출가일, 열반일, 탄신일, 백중일, 성도 재일을 중시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정초 기도 법회와 칠석 기도, 동지 기도 행사를 하며, 매월 음력 초하루 기도와 15일에는 보름 인등 기도, 18일에는 지장 재일 기도, 24일에는 관음 재일 기도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임휴사는 관음 기도 도량으로서 기도와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지역민을 위한 마야유치원을 운영하며 어린이법회를 함께 이끌고, ‘불교전문교육원’을 개설하여 교육과 포교에 힘쓰고 있다. 또 임휴사 화재 다음 해인 2005년 부처님오신날에는 경내에서 개최된 산사음악회는 지역 주민의 많은 참여로써 임휴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임휴사 불자들로 구성된 왕건합창단이 2014년 1월에 창단되어 사찰 내외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임휴사 불자회에서는 매년 관내 독거노인과 경로당을 방문하여 위문 봉사활동을 하고,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임휴사 당우로는 중심 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나한전, 삼성각, 반야당, 요사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팔작 기와지붕 양식으로 아미타불을 주불로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협시로 두고 있다. 후불탱화를 비롯한 탱화 2점은 모두 1999년에 조성되었다. 십육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 기와지붕 양식으로 16나한상을 봉안하고 있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 기와지붕 양식으로 내부에는 칠성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반야당은 팔작 기와지붕 구조에 ‘ㄱ’ 자형을 하고 있는데, ‘반야당’ 현판이 있는 정면은 4.5칸, 측면은 5.5칸 규모이며 승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 건물의 요사는 종무소와 공양간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임휴사 위쪽 굴속에 ‘석샘’이라는 약수터가 있는데, 위장병에 특효가 있는 약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전에 의하면 석두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고 당시 샘의 천장에서는 쌀이 떨어졌는데 행자가 욕심을 부려 부지깽이로 쑤신 뒤 물로 변하였다고 한다.

[관련 문화재]

임휴사에는 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문화재에 버금가는 종형의 조선 후기 부도 1기가 유존한다. 복련을 새긴 자연석 기단에 탑신석과 보주를 하나의 돌로 조성하였으며, 당호는 새기지 않았다. 보주는 연주문 받침 위에 연꽃 봉우리를 얹은 형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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