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71
한자 大邱 辰泉洞 立石
이칭/별칭 대구 진천동 입석,진천동 선사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470-38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민선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청동기시대 - 대구 진천동 입석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10월 25일~1998년 1월 26일 - 대구 진천동 선사유적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12월 23일연표보기 - 대구 진천동 입석 사적 제411호로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0년 11월 14일 -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선사유적공원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6월 29일 - 대구 진천동 입석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소재지 대구 진천동 입석 -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470-38 지도보기
성격 기념물|입석
크기(높이,지름) 210㎝[입석 높이]|150㎝[입석 너비]|110㎝[입석 두께]|20~25m[기단 길이]|10~12.5m[기단 너비]
관리자 대구광역시 달서구청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석축 기단이 있는 선돌.

[개설]

대구 진천동 입석(大邱 辰泉洞 立石)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석축 기단이 있는 선돌이다. 진천천(辰泉川)의 북쪽에 분포하는 진천동 고인돌의 Ⅰ에 해당된다. 조사 당시에는 고인돌의 덮개돌[상석(上石)]로 추정하였으나 석축 기단 위에 세워진 암각화가 시문된 선돌로 확인되었다. 선돌은 자연석 또는 기둥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세운 거석기념물로 신앙적 대상 또는 마을 입구나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진천동 입석이 있는 월배 지역에는 대구 월암동 입석, 대구 상인동 입석 등 많은 입석 유적이 있다.

[위치]

대구 진천동 입석달서구 진천동 470-38번지에 있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진천역에서 남서쪽으로 약 450m 정도 떨어진 진천동 선사유적공원에 해당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7년 10월 25일부터 1998년 1월 26일까지 경북대학교 박물관진천동 입석에 대한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석축 기단을 가진 선돌 유적으로 확인되었고, 주변에서 5기의 돌널무덤[석관묘]이 조사되었다.

[형태]

대구 진천동 입석은 전체적으로 위가 둥글며 아래는 넓은 부정형의 화강암이며, 크기는 높이 210㎝, 너비 150㎝, 두께 110㎝ 정도이다. 선돌의 북쪽 편평한 가공면의 우측 상부에 홈구멍[성혈(性穴), 여성 생식기 또는 제의와 관련된 행위의 소산으로 추정] 6개, 서쪽면에서는 동심원문[태양이나 사람의 얼굴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 4개가 확인된다. 입석 아래에 축조된 기단은 평면 형태 장방형이며, 길이 20~25m, 너비 10~12.5m 정도이다. 기단은 본래 7~8단 정도 쌓아 구지표면을 기준으로 높이 70㎝ 정도로 추정된다. 입석 주변에서 돌널무덤 5기가 함께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의 양 단벽은 납작한 돌을 1매를 세웠고, 양 장벽은 납작한 돌을 여러 매를 세워서 돌널을 만들었다. 모두 뚜껑돌[개석]이 확인되었지만,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

대구 진천동 입석의 기단 상부와 주변에서 다량의 민무늬토기편[무문토기편]과 붉은색간토기편[적색마연토기편], 관옥형 토제품, 홈자귀[유구석부], 숫돌, 박편 등이 수습되었다.

[현황]

대구 진천동 입석은 1998년 12월 23일 사적 제411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사적 지정을 계기로 발굴 조사된 선돌 1기, 돌널무덤 5기를 보존하고, 모형돌널무덤 2개소, 모형 선돌 1개소 등을 만들어 전시하는 진천동 선사유적공원으로 2000년 11월 14일 조성하였다. 공원 주변의 가로등과 전신주에 선사시대 원시인들의 다양한 포즈를 담은 광고판 조형물을 설치하였고, 월배 지역 청동기시대 유적 탐방 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진천동 입석에 새겨진 홈구멍과 동심원문은 제의와 관련된 것이다. 입석 아래에 석축 기단을 쌓고, 선돌 주변에 돌널무덤이 조성된 점으로 보아 선돌을 중심으로 공동 제의 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선돌 주변에서 민무늬토기편들이 함께 출토되어 청동기시대의 것임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석축 기단 위에 세워진 대구 진천동 입석은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되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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