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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216
한자 新院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운문면 신원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운문면 신원동에서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61.50㎢
가구수 277가구
인구[남,여] 696명[남자 260명, 여자 436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청도군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도 20호선[청려로]를 따라 가다 운문면에서 울산광역시 울준군 언양읍으로 가는 길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고려 시대에 일연『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집필한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김사미 농민 운동의 본거지이자 일제 강점기 최초 항일 운동의 청도군 거점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현재는 운문사운문산 군립 공원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상업 지구로 변모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명칭 유래]

신원(新院)은 새로 만들어진 원(院)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로는 속계 마을, 염창, 황정리, 사기점, 장군평, 천문동, 통점이, 삼계리 등이 있다.

신원리 입구 마을은 내포라고 하며, 큰 각단 또는 속계 마을이라고 부른다. 속계 솥을 만들던 곳이다. 염창은 소금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정리는 신라 진평왕이 가슬갑사에 수도하고 있는 원광 국사와 나랏일을 의논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 머물렀다 하여 황정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기록은 없다. 또 황정리는 고려 말 장연 노씨들의 세거지이로, 공양왕의 비가 장연 노씨 집안이었기에 황정리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사기점은 솔밭과 황정리 부근이고 신라 때 대작갑사가 있던 곳이라 해서 절터[사기(寺基)]라고 한다고 전해오고 있다.

장군평은 운문사 서쪽, 지금의 목우정 아래에 있는 들로 사하촌(寺下村) 사람들이 살았다. 신라 말 고려 초에 김식희 장군과 손긍훈 장군이 고려를 건국하는 데 도움을 주어서 벽상공신으로 녹훈을 받은 땅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기록은 없다. 운문사 조사당에 보면 두 사람의 초상이 남아 있다.

천문동은 천문갑사가 있었던 자리 부근에 인가가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숯을 굽던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통점이[통지미]는 신원동 본동과 삼계리와의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지룡산성으로 가는 길이 가장 완만하게 오를 수 있는 곳이긴 하나 마을의 이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전하는 말이 없다.

삼계리는 글자 그대로 계곡 세 개가 모인 곳을 말한다. 언양 고개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배넘이 고개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안 삼계리는 삼계리에서 경주시 산내면 신원리 신원사로 넘어 가는 길목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18세기까지 도자기를 구웠던 요지가 있었지만, 최근에 가축을 기르고, 식당이 들어서면서 그 흔적이 없어졌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동이위면(東二位面)에 속해 있었다가, 1832년 이위면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미면(古彌面)의 6개 동[봉산(奉山), 정하(亭下), 정상(亭上), 마상(馬上), 마하(馬下), 지촌(芝村)]을 병합하여 신원동이라 하였고, 운문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신원동에서 신원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찍이 운문사가 있어 산골 중에 산골이면서도 신라와 고려·조선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탐방지가 되었던 곳이다. 신라 때 원광 국사를 시작으로 보양 국사를 위시하여 원응 국사가 주석(駐錫)한 곳이기도 하다. 일연 왕사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이다. 또 김사미가 주동이 된 농민 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던 곳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며 빠른 시기에 개화가 시작되었고, 따라서 사립 문명 학교가 청도군에서 가장 먼저 개교를 하였던 곳이다. 사립 문명 학교 출신들은 일제 강점기에 신원리를 중심으로 항일 운동을 벌였으며, 인근 지역에서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하게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자연 환경]

신원리운문산문복산, 가지산 등의 높은 산을 끼고 있다. 이와 같이 깊은 골짜기에 철광이 생산되었고 지금도 계곡 곳곳에는 철을 다루었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운문사문복산, 가지산 등에는 갖가지 바위들과 함께 여러 가지 전설들이 전해진다.

가지산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의 지맥이 지룡산성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두 개의 봉우리가 쌍으로 불쑥 내밀은 곳은 쌍두봉이라 부른다. 운문사 서쪽으로는 약야계라 불리는 개울이 흐른다. 보양 국사가 중국 운문산에서 불교를 배운 후 운문 선사라는 사액을 받고 운문사라 이름을 바꾼 것에서 기인하여, 중국 운문산에 흐르는 계곡 약야계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것이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61.50㎢으로 청도군에서는 가장 넓은 지역을 지니고 있으며, 총 277가구에 696명[남자 260명, 여자 43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서쪽은 금천면 박곡리, 남쪽은 경상남도 일양시 산내면 원서리·삼양리, 북쪽은 운문면 방음리·오진리·산내면 일부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속계 마을, 염창, 황정리, 사기점, 장군평, 천문동, 통점이, 삼계리 등이 있다.

국가 지원 지방도 69호선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신원리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 도로를 따라 대천 공용 여객 자동차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3번 버스가 방음리를 지나 운문사 정류장까지 다닌다.

신라 때 창건한 사찰인 운문사는 1956년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정화운동으로 대처승을 내보내고 비구니 스님들이 운집해 살면서부터 우리나라 제일의 비구니 도량이 되었다. 소속 암자로는 사리암(邪離庵)과 내원암(內院庵), 북대암(北臺庵), 청신암(靑神庵), 문수 선원(文殊禪院)이 있다.

현재는 운문사삼계리 계곡, 운문산 일대가 관광지로 거듭나면서 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지로 바뀌어 신원리 전체가 사람의 발길에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다. 운문사 바로 앞까지 상점과 식당이 늘어져 있었지만, 모두 운문사 시설 지구로 이전되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비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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