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491
한자 扶餘 王陵園
이칭/별칭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능산리 산16-2]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서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15년 - 부여 왕릉원 중앙 고분군, 서 고분군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17년 - 부여 왕릉원 중앙 고분군, 서 고분군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38년 - 부여 왕릉원 동 고분군 발굴 조사 실시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부여 왕릉원 부여 능산리 고분군 사적 제14호 지정
보수|복원 시기/일시 1965년~1966년 - 부여 왕릉원 중앙 고분군 보수 정비 공사 실시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5년 7월 - 부여 왕릉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6년~2018년 - 부여 왕릉원 서 고분군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21년~2022년 - 부여 왕릉원 동 고분군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21년~2022년 - 부여 왕릉원 서상총과 서하총에 대한 재조사 실시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9월 17일연표보기 -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부여 왕릉원으로 명칭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여 왕릉원 사적으로 변경 지정
소재지 부여 왕릉원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능산리 산16-2]지도보기
성격 고분군|사적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개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사비도성 동쪽에 있는 능산리산 남사면에 3곳으로 나뉘어 조성된 왕릉원으로 추정되는 백제 사비 시기 돌방무덤 고분군이다. 1963년 1월 21일 부여 능산리 고분군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9월 17일 능산리 고분군에서 부여 왕릉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부여 왕릉원은 백제 사비도성의 외곽성인 부여 나성(羅城)부여 능산리 사지의 동쪽에 있는 능산리산의 남사면에 있다. 오래전부터 백제 왕릉으로 전해져 온 부여 왕릉원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3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위치에 따라 각각 중앙 고분군, 동 고분군, 서 고분군으로 불리고 있다. 중앙 고분군에서 동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동 고분군이, 서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서 고분군이 각각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자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부여 왕릉원은 일제 강점기인 1915년[1차]과 1917년[2차]에 중앙 고분군에서 6기, 서 고분군에서 2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되었고, 1938년[3차]에 동 고분군에서 5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되어 백제 왕릉급 고분군임이 밝혀졌다. 광복 후 1965~1966년 중앙 고분군의 보수 정비 공사 과정에서 7호분과 8호분이 추가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부여 왕릉원은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백제 왕도 핵심 유적에 포함되면서 복원 정비를 위하여 아직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동 고분군과 서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실시된 4차~8차 조사에서 서 고분군,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된 9차 조사에서 동 고분군, 2021년과 2022년에 중앙 고분군의 서상총과 서하총에 대한 재조사가 실시되었다. 서 고분군에서는 백제 시대 돌방무덤 4기 외에도 백제 시대 건물지와 주거지, 청동기 시대 매납 유구, 통일 신라 시대 돌방무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분묘와 구덩이 유구 등 적지 않은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동 고분군에서도 백제 시대 돌방무덤 2기가 확인되었는데 그중 1기의 고분은 1호분~5호분에 이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2023년 현재까지 중앙 고분군에서는 8기, 서 고분군에서는 4기, 동 고분군에서는 6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형태]

중앙 고분군과 동 고분군·서 고분군은 각각 주 능선과 가지 능선을 따라 상하로 열을 지어 고분을 배치시켰는데, 대체로 중앙의 주 능선에 큰 고분들이 배치되었다. 고분은 평면 원형의 봉분이 확인되는데, 규모는 중앙 고분군이 직경 20~30m로 크고, 서 고분군이 15~20m 정도이다. 동 고분군도 서 고분군과 비슷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분 외곽에는 둘레돌을 둘렀는데, 서1호분~3호분과 일제 강점기 조사에서 중앙 고분군의 동하총, 동상총, 서상총에서 확인되어 동 고분군을 포함한 부여 왕릉원의 대부분의 고분에는 둘레돌을 둘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방무덤은 모두 지하에 있는 굴식이며, 널방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 천장은 아치형 천장[또는 터널 천장]·단면 육각형의 평사천장·단면 방형의 평천장으로 다양한데, 시기나 계통 차이에 의한 것이다.

중앙 고분군 중 중하총은 널방의 평면이 갑(甲)자형이고, 아치형 천장에 장대석으로 벽석을 축조하였으며, 바닥에 전면에 작은 방형 판석을 깐 점에서 공주 무령왕릉과 비슷한 요소가 남아 있고, 봉분과 돌방무덤도 모두 대형이어서 가장 이른 시기 무덤으로 추정된다. 동1호분과 동2호분은 널방의 평면이 갑(甲) 자형이며, 단면 육각형 평사천장에 장대석으로 벽석을 축조하였으며, 현문은 문틀식 구조이다. 그리고 중상총은 널방의 평면이 정ㄱ자형이고 단면 육각형 평사천장에 판석을 세워 벽석을 축조하였으며, 현문은 문틀식 구조인데, 이와 비슷한 돌방무덤은 서하총과 동3호분, 동4호분 등이 있다. 중앙7호분은 널방의 판석 축조와 단면 육각형 평사천장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평면 형태가 갑 자형이어서 차이가 나고, 널방 규모도 약간 줄어든 것이다. 중앙 고분군의 동상총, 동5호분, 서3호분, 서4호분도 이와 비슷한 구조로 볼 수 있는데, 늦은 시기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동하총은 널방의 평면이 갑 자형이고 단면 방형의 평천장에 판석으로 벽석을 축조하였으며, 현문은 문틀식 구조로 천장 구조에서 다른 고분들과 차이가 뚜렷한데, 중앙8호분, 서1호분과 서2호분도 이와 비슷한 구조이다. 동하총은 널방 내부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 점이 특징적인데, 천장에는 8엽의 연화문을 3열로 7개 배치시키고 나머지 공간은 비운문으로 채웠다. 네 벽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돌방의 구조와 함께 사신도라는 벽화 내용으로 보아 진파리 고분군 등 고구려 벽화 고분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널방 바닥의 관대는 별도로 마련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중상총이나 동상총처럼 판석을 깔아 마련하기도 하고, 동하총처럼 작은 방형의 판석들로 만들기도 하였다. 동1호분과 동2호분은 할석을 군데군데 놓아 마련하였다. 목관은 잘 남아 있지 않지만 목관 조각, 관고리, 금은장 원두정, 철제 널못 등이 확인되었다. 목관은 일제 강점기에 중앙 고분군과 동 고분군, 서2호분 등에서 금송제 목관이 확인되어 부여 왕릉원의 목관은 거의 대부분 금송제일 가능성이 있다. 중앙 고분군 동하총에서도 목관이 일부 남아 있는데 상원하방형이며, 전체적으로 옻칠이 되었고, 가장자리에는 금동판으로 테두리 장식을 하였다. 서2호분과 중앙7호분처럼 가장자리에 금도금으로 테두리 장식을 하고 옻칠은 금박 아래에 얇게 되어 있는 목관도 확인된다.

[출토 유물]

유물은 도굴이나 일제 강점기 조사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관고리, 널못, 금동제 투조 금구 등의 목관 부속구 외에 금제 화형과 원형 장식, 금사 등이 소수 확인될 뿐이다. 동3호분에서는 금제 관모 장식 옥, 금제나 금동제 옥 등이 출토되었고, 서2호분에서는 용문이나 쌍조문 등이 표현된 금제 장식 유물도 출토되었다.

[현황]

부여 왕릉원은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여 왕릉원사비도성의 외곽성인 부여 나성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고분의 입지와 배치, 봉분의 존재와 규모, 돌방무덤의 구조와 규모, 석재의 치석 정도가 다른 고분군들보다 탁월하여 백제 사비 시기 왕릉이나 왕족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 세 고분군 중 동 고분군은 고분의 규모나 축조 양상이 중앙 고분군에 비하여 열악한 편이고, 서 고분군도 2호분과 같이 위계가 높은 고분도 있지만 봉분이나 석실 규모 등에서 중앙 고분군에 미치지 못하여 위계 차이가 뚜렷한 편이다. 따라서 중앙 고분군은 왕과 왕비의 무덤, 동고분군과 서고분군은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