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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학의 오누이 힘내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449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3년 3월 13일 - 「이몽학의 오누이 힘내기」 부여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부여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성재바위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지도보기
채록지 교원리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교원리 지도보기
채록지 동남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이몽학|이몽학의 누이
모티프 유형 역사 인물|오누이 힘내기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이몽학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이몽학의 오누이 힘내기」는 1596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충청남도 홍산(鴻山)[현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몽학(李夢鶴)[?~1596]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이몽학이 누이와 성 쌓기 내기를 하였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이몽학이 이겼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이몽학의 오누이 힘내기」는 2003년 발행한 『부여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교원리부여읍 동남리의 마을 주민이 구술한 내용이 채록되어 있으나, 채록 시기와 구술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내용]

옛날에 이몽학이 누이와 함께 살았는데 남매가 모두 몸집이 크고 힘이 좋았다. 이몽학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임금 노릇을 하고 싶어 하였으나, 누이는 이몽학을 말리고는 하였다. 이에 이몽학이 누이를 죽이고자 누이에게 내기를 제안하였다. 큰 돌을 날라 누가 먼저 성을 쌓는지 겨루는 내기였는데, 진 사람이 죽기로 하였다.

내기가 시작되자 오누이의 어머니는 팥죽을 쑤어 누이에게 가져다주었다. 일부러 누이의 일을 늦추기 위하여서였다. 누이는 팥죽을 먹으면 내기에서 지는 것을 알았으나 거절할 수 없었다. 팥죽을 다 먹은 누이가 돌을 다시 나르려 하였으나, 시간이 이미 지체되어 이몽학이 성을 완성하고 내려왔다. 누이는 나르려던 큰 돌을 논배미에 던졌고, 내기에서 진 바람에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몽학은 누이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역적이 되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현재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먹고개 부근에는 이몽학이 쌓았던 성의 흔적과 누이가 던진 바위로 전하는 성재바위가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이몽학의 오누이 힘내기」의 주요 모티프는 ‘역사 인물’, ‘오누이 힘내기’이다. ‘오누이 힘내기’ 모티프는 전국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 하지만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전하여지는 이야기는 역사 인물인 이몽학을 중심으로 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몽학과 관련된 전설은 부여군 홍산면부여읍뿐만 아니라 부여 지역 내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대체로 이몽학의 누이는 착한 인물, 이몽학은 그렇지 않은 인물로 그려진다.

이몽학은 누이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민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민란은 실패하고 이몽학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이와 같은 비극적 죽음은 민란을 일으킨 이몽학에 대한 민중의 연민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몽학을 역적이 아닌 민중의 영웅으로 그린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이 경우 이몽학은 불운하여 민란에 실패한 민중의 비극적 영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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