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072
한자 人文地理
영어공식명칭 Human Geography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성욱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의 형성 과정, 인구 변화, 역사, 계화도 및 새만금 간척지 등 인문 지리적 측면의 특징.

[부안군의 형성 과정]

부안군은 삼한 시대에 마한(馬韓) 54국의 하나인 지반국(支半國) 지역이었다. 삼국 시대에 백제의 개화현(皆火縣)으로, 통일 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부령현(扶寜縣)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시대인 1416년(태종 16)에는 북쪽의 부령현과 남쪽의 보안현을 합하여 부안현(扶安縣)이라 하였다. 별호는 낭주(浪州) 또는 부풍(扶風)이다.

1895년에 전주부 부안군, 1896년에 전라북도 부안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서면·하서면·건선면은 그대로 두고, 동도면·하동면을 부령면으로, 남하면·소산면을 주산면으로, 상동면·이도면·일도면을 동진면으로, 남상면·서도면을 행안면으로, 입상면·입하면을 보안면으로, 좌산내면·우산내면을 산내면으로 통합하고, 고부군 지역이던 거마면·덕림면·백산면을 백산면으로 통합하여 부안군에 편입하였다[10면].

이후 1931년에 줄포항의 이름을 따서 건선면을 줄포면으로 개칭하였다. 1943년에 부령면이 부안읍으로 승격되었고, 1963년에 위도면이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부안군으로 이관되었다[1읍 10면]. 1963년부터 시작된 당시 우리나라 최대의 간척 사업인 계화도 간척 사업이 15년 만에 완공되고, 1978년에 쌀 추수가 시작되고 주민들의 이주가 이루어짐에 따라, 1983년에 행안면 계화출장소가 계화면으로 승격되었다[1읍 11면]. 그리고 1983년 산내면 진서출장소도 진서면으로 승격되었다[1읍 12면]. 1987년에 산내면이 변산면으로 개칭되었다.

부안군의 1읍[부안읍] 12면[주산면, 동진면, 행안면, 계화면, 보안면, 변산면, 진서면, 백산면, 상서면, 하서면, 줄포면, 위도면] 중에서 변산반도 국립 공원에 해당하는 지역은 5개 면[변산면, 상서면, 진서면, 하서면, 보안면] 지역이다. 변산(邊山)이라는 지명은 삼한 시대[변한]와 삼국 시대부터 등장하는데, 행정 구역명으로 등장한 것은 1983년 부안군 산내면이 진서면과 분리되고, 1987년 산내면을 변산면으로 개칭한 때부터이다.

[부안군의 인구 변화]

2019년 12월 31일 기준 부안군의 인구는 5만 4150명이다. 전라북도 14개 시군 중에서 9위이며, 6개 시를 제외한 8개 군 중에서는 완주군 9만 5881명, 고창군 5만 6467명에 이어 3위 규모로 전라북도 전체 인구 185만 1991명의 2.92%를 차지한다. 부안군의 인구 변화를 5년 단위로 살펴보면 1960년 14만 9707명, 1965년 17만 2866명, 1970년 16만 1273명, 1975년 15만 5887명, 1980년 13만 894명, 1985년 11만 4306명, 1990년 10만 2787명, 1995년 8만 4383명, 2000년 7만 4877명, 2005년 6만 5267명, 2010년 6만 597명, 2015년 5만 7492명이다. 부안군의 인구수가 가장 많던 때는 1966년으로 17만 5044명이었으며, 이후 계속 감소하여 1992년[9만 2812명]부터 1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부안군에는 1개 읍과 12개 면이 있는데, 2019년 12월 31일 기준 부안읍의 인구수는 2만 1038명으로 부안군 전체 인구 5만 4150명의 38.85%를 차지한다. 그 외에 면별 인구수는 변산면[4,785명], 계화면[3,738명], 동진면[3,095명], 하서면[2,884명], 줄포면[2,794명], 백산면[2,671명], 보안면[2,582명], 진서면[2,477명], 행안면[2,461명], 상서면[2,340명], 주산면[2,071명], 위도면[1,214명]의 순이다. 이 중 위도면은 섬으로만 이루어진 면이다.

2018년 부안군의 출생자 수는 215명, 사망자 수는 710명으로 인구의 자연 감소 현상[-495명]이 일어나고 있다. 인구의 사회적 측면에서도 전입 인구[5,305명]보다 전출 인구[6,485명]가 많아서 인구 감소가 발생하고 있다[-1,180명]. 전출 인구[6.485명]를 살펴보면, 부안군에서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인구 중 전라북도 내로 이동하는 인구수는 4,056명으로 62.54%를 차지하며, 타 시도는 경기도[697명], 서울특별시[556명], 인천광역시[169명]으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인구 비율이 21.93%를 차지한다. 그리고 주변 지역인 광주광역시[223명], 충청남도[169명], 전라남도[135명] 등은 8.13%를 차지한다. 기타 지역[362명]은 5.58%를 차지한다. 이와 같이 부안군에서 유출되는 인구는 전라북도로 유출되는 비율이 가장 높고[62.54%], 두 번째는 수도권[21.93%], 그 다음은 주변 시도 지역[8.13%]의 순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부안군으로 유입되는 인구[5,305명]의 분포를 살펴보면, 전라북도 내[3,430명]가 64.66%를 차지한다. 경기도[538명], 서울특별시[459명], 인천광역시[135명] 등 수도권의 비율이 21.34%를 차지하고, 주변 지역인 전라남도[131명], 광주광역시[129명], 충청남도[117명]가 7.11%를 차지한다. 기타 지역[366명]은 6.90%를 차지한다. 이와 같이 전입과 전출 인구의 패턴이 전라북도 내부, 수도권, 주변 지역으로 유사한 비율로 나타난다.

[부안군의 역사적 측면]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백제 땅에 원래 변산(卞山)이 있으므로 변한(卞韓)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산이 겹겹이 쌓여 높고 깎아지른 듯하며 바위와 골이 그윽하다.”라고 하였고,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도 “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이 변산(邊山)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정감록(鄭鑑錄)』 등의 비결(秘訣)에서는 전라북도의 운봉, 무풍과 함께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변산 십승지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호암(壺岩) 아래 변산의 동쪽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현재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굴바위 부근과 울금 바위 부근 지역으로 추정된다. 또한 변산능가산(楞伽山)·영주산(瀛洲山)·봉래산(蓬萊山) 등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 왔으나, 변산반도의 산 중에서 변산으로 불리는 산봉우리는 없으며, 변산반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의상봉[또는 기상봉, 508.6m]이다.

부안군의 역사 유적으로는 변산면대항리 패총(大項里貝塚), 계화면 계화리주산면 소산리에 신석기 유적, 하서면 석상리 일대에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인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扶安龜岩里支石墓群), 제사 유적인 수성당(水城堂)[용굴], 보안면 유천리 일대에 고려자기를 구워 낸 도요지인 부안 유천리 요지(扶安柳川里窯址) 등이 있다.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우금산성(禹金山城)[울금산성]은 663년 백제 부흥 운동 당시의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개암사(開巖寺)의 뒷산에 해당하는 우금 바위[울금 바위]에는 남쪽과 동쪽으로 3㎞ 남짓한 우금산성이 있는데, 우금산성은 660년(의자왕 20) 백제 사비성의 함락 이후, 백제 부흥군인 도침과 복신의 지휘 아래 백제 부흥 운동 세력이 결집한 장소이다. 주류성은 663년 9월 7일 나당 연합군에게 함락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호벌치 전투가 있었으며,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당시에 백산면백산성은 동학군이 집결하여 ‘서면 백산[흰옷], 앉으면 죽산[죽창]’이라고 할 정도로 동학 농민 운동의 중요 활동 지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적벽강 부근에는 칠산 어장의 안녕을 빌던 제사 유적이 발견된 죽막동 수성당이 있으며, 격포의 봉화봉과 계화도계화산에는 봉화대가 보존되어 있다.

변산반도에 위치하는 역사가 깊은 사찰로는 백제 시대인 633년(무왕 34)에 건립된 내소사(來蘇寺)[진서면], 634년(무왕 35)에 건립된 개암사[상서면], 통일 신라 시대인 691년(신문왕 11)에 건립된 월명암(月明庵)[변산면] 등이 있다. 또한 변산반도에 삼림이 울창하고 송림이 유명하여 고려 시대 때부터 궁실과 배의 재목으로 사용하였는데 이곳의 목재를 변재(邊材)라고 하였다. 몽고가 고려를 침입한 뒤 일본 정벌을 꾀하였을 때 이곳의 변재로 전함을 만들었다

[계화도와 새만금 간척지]

부안군 북부에 위치하는 계화도 간척지는 1963년부터 시작된 간척 사업이다. 계화도부안군 동진면을 잇는 제1방조제[1963~1966년, 9,254m, 제1배수 갑문]와 제2방조제[1965~1968년, 3,556m]를 축조하고, 간석지 27.41㎢를 농경지로 변모시켜, 1978년에 처음 농산물을 생산하였다. 이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여 1983년 2월 계화면으로 승격되었다[5리 27마을, 면 소재지 창북리]. 특히 이 지역은 1961~1965년 사이에 섬진강 상류에 옥정리 댐이 완공되어 운암호에 물이 모이면서 발생한 수몰민 2,786세대의 이주와 정착이 목표였다. 1968~1978년에는 방조제 안쪽에 청호 저수지, 동진 도수로, 조포 지구 개답, 계화 지구 개답, 취락 건설 사업 시행, 창북에서 계화도를 잇는 도로 개설이 이루어졌다. 이 지역에 필요한 농수는 섬진강 댐에서부터 청호 저수지까지 연결되는 인공 수로인 동진강 도수로에 의해 공급되고 있다.

그리고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시작되는 새만금 방조제는 군산시 비응도동까지 연결되는 총 33.9㎞에 이르는 방조제로, 새만금 간척 사업에 의해서 방조제 안쪽에 매립지[291㎢]와 호소[118㎢] 등을 포함하여 총 409㎢ 면적의 간척지를 조성하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는 1991년 11월 28일에 시작하여 2010년 4월 27일 준공되었는데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32.5㎞]보다 1.4㎞가 더 길어,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행정 구역으로는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에 해당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간척 사업이다.

[부안군의 현황]

부안군의 교육 기관은 초등학교 22개, 중학교 13개[공립 9개, 사립 4개], 고등학교 7개[일반계 5개, 특성화 2개/공립 5개, 사립 2개]이다. 그리고 공공 도서관은 3개[부안군립 도서관, 계화 도서관, 부안 교육 문화 회관]가 있다.

교통은 서해안 고속 도로[고속 국도 제15호선]와 연결되는데 북쪽에서부터 부안 나들목, 줄포 나들목을 통해 접근이 가능하다. 그리고 국도는 부안읍줄포면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국도 제23호선, 부안읍에서 줄포면까지 변산반도의 해안을 연결하는 국도 제30호선, 새만금 방조제로 군산과 연결되는 국도 제77호선이 있다. 지방도는 변산반도 내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지방도 제736호선, 부안군 부안읍줄포면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지방도 제707호선, 계화도상서면을 연결하는 지방도 제705호선 등이 있다.

어항으로는 국가 어항인 격포항위도항, 국가 관리 연안 어항인 상왕등도항, 지방 어항인 곰소항, 궁항항, 성천항, 송포항, 식도항이 있으며, 어촌 정주 어항으로 도청항, 왕포항, 모항항, 대리항, 벌금항이 있다. 부안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한 주요 인물들은 시인 신석정(辛夕汀)[1907~1974]과 이매창(李梅窓)[1573~1610], 보안면에서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저술한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 계화도에 정착한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 등이 있다.

부안군에는 부안 댐사산 저수지, 청호 저수지, 고마제, 영전 저수지, 남포 저수지, 청림제, 우동제, 석포 저수지, 운호 저수지, 유유 저수지, 개암 저수지, 종암 방죽 등의 수리 시설이 있으며, 변산면 대항리에 변산 온천이 있다. 부안군의 특산물로는 과거 칠산 어장으로 유명하던 위도의 조기, 곰소 젓갈, 유유마을의 뽕잎과 오디, 곰소천일염과 함초, 개암사죽염, 보안면 유천리의 고려자기 등이 있다. 전북 서해안권 국가 지질 공원에서 부안군은 변산면에 5곳[적벽강, 채석강, 솔섬, 모항, 직소 폭포]과 위도가 포함되어 있다.

[부안군의 문화재]

부안군 내의 문화재 지정 현황을 보면 총 61종 391점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가 25종 336점이며 전라북도 문화재가 36종 55점이다. 국가 지정 문화재 중 보물은 9종으로 보물 제277호 부안 내소사 동종(扶安來蘇寺銅鍾), 보물 제278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 보물 제291호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扶安來蘇寺大雄寶殿), 보물 제292호 부안 개암사 대웅전(扶安開岩寺大雄殿), 보물 제739호 고희 초상 및 문중 유물, 보물 제900호 부안 김씨 종중 고문서 일괄(扶安金氏宗中古文書一括), 보물 제1268호 「내소사 영산회괘불탱」, 보물 제1269호 「개암사 영산회괘불탱」 및 초본, 보물 제2062호 「최광지 홍패(崔匡之紅牌)」가 있다.

사적은 5곳으로 사적 제69호 부안 유천리 요지, 사적 제70호 부안 진서리 요지(扶安鎭西里窯址), 사적 제103호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사적 제409호 부안 백산성(扶安白山城), 사적 제541호 부안 죽막동 유적(扶安竹幕洞遺蹟)이 있다. 명승은 3곳으로 명승 제13호 부안 채석강·적벽강 일원(扶安彩石江赤壁江一圓), 명승 제116호 부안 직소 폭포 일원(扶安直沼瀑布一圓)과 부안 우금바위 일원>이 있다.

부안군 내의 천연기념물은 천연기념물 제122호 부안 도청리 호랑가시나무 군락, 천연기념물 제123호 부안 격포리 후박나무 군락, 천연기념물 제124호 부안 중계리 꽝꽝나무 군락, 천연기념물 제370호 부안 미선나무 자생지 등이 있다. 국가 민속 문화재는 국가 민속 문화재 제18호 부안 서문안 당산, 국가 민속 문화재 제19호 부안 동문안 당산, 국가 민속 문화재 제150호 부안 김상만 고택(扶安金相萬古宅)이 있다. 근대 문화유산으로는 국가 등록 문화재 제177호 구 부안금융조합(舊扶安金融組合)이 있으며, 국가 무형 문화재 제82-3호 위도 띠뱃놀이가 있다.

전라북도 지정 문화재 중 유형 문화재는 11종으로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58호 수성당,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59호 서외리 당간지주(西外里幢竿支柱),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01호 위도 관아(蝟島官衙),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23호 청림리 석불좌상(靑林里石佛坐像),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24호 내소사 삼층석탑(來蘇寺三層石塔),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25호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26호 개암사 동종(開岩寺銅鐘),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40호 「부설전(浮雪傳)」,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71호 용화사 미륵불입상(龍華寺彌勒佛立像),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79호 개암사 응진전 16나한상,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55호 내소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來蘇寺木造阿彌陀三尊佛座像)이 있다.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는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7-1호 부안 농악,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23호 죽염 제조장(竹鹽製造匠)[죽염 제조][허재근],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29호 사기장(砂器匠)[청자][이은규],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30호 대목장(大木匠)[대목][김정락],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34호 가사(歌詞)[가사][김봉기]가 있다. 전라북도 민속 문화재는 전라북도 민속 문화재 제6호 보안 입석(保安立石), 전라북도 민속 문화재 제17호 쌍조 석간(雙鳥石竿), 전라북도 민속 문화재 제18호 남문안 당산, 전라북도 민속 문화재 제19호 돌모산 당산, 전라북도 민속 문화재 제20호 죽림리 석장승, 전라북도 민속 문화재 제30호 월천리 석장승이 있다.

전라북도 기념물은 12곳으로 전라북도 기념물 제20호 우금산성, 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 반계 선생 유적지(磻溪先生遺蹟地), 전라북도 기념물 제23호 간재 선생 유지(艮齋先生遺址), 전라북도 기념물 제30호 정유재란 호벌치 전적지(丁酉再亂胡伐峙戰蹟地), 전라북도 기념물 제40호 사산리 와요지(士山里瓦窯址), 전라북도 기념물 제50호 대항리 패총, 전라북도 기념물 제65호 이매창 묘(李梅窓墓), 전라북도 기념물 제77호 부안 실상사지(扶安實相寺址),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 내소사 일원(來蘇寺一圓), 전라북도 기념물 제84호 신석정 고택(辛錫正故宅), 전라북도 기념물 제127호 지포 김구 선생 묘역 일원(止浦金坵先生墓域一圓), 전라북도 기념물 제140호 부안 점방산 봉수(扶安占方山烽燧)가 있다. 또한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93호 부안향교 대성전(扶安鄕校大成殿),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11호 고홍건 신도비(高弘建神道碑)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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