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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리 용서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112
한자 茁浦里龍西堂山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 용서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당산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 용서마을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정월 열나흩날 한밤중
신당/신체 마을 입구 팽나무|마을 뒤편 소나무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 용서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줄포리 용서 당산제 는 음력 정월 열 나흗날 한밤중에 줄포리 용서마을 당산에서 큰할머니 당산과 작은할머니 당산을 모시고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풍년을 빌며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부안 지역에서 행해지는 당산제는 일반적으로 정월 초에서 보름날에 행하여지며, 제주는 종교적인 의미로 깨끗한 사람을 선정한다. 초상집에도 가지 않고 비린 것과 개고기를 먹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보통 제관, 축관, 집사 등을 선정한다. 제주는 보통 남자로 선정하는데, 제물은 주당산과 따로 준비한다. 제물은 돼지머리를 비롯하여 삼색실과, 주(酒), 포(脯), 떡 등이 준비된다. 비용은 일반적으로 마을 재산이나 공동으로 갹출한 것으로 충당한다. 제는 진설, 재배, 초헌, 축, 아헌, 종헌, 소지, 음복 순으로 유교식 절차로 진행되며, 제가 끝나면 함께 음복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한다.

[연원 및 변천]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 용서 당산제는 소나무인 큰할머니 당산과 팽나무인 작은할머니 당산에서 모셨다. 당산제는 1950년 무렵까지만 해도 용서마을이 주축이 되어 인근 후촌마을이 참여하여 지냈다. 큰할머니 당산인 소나무가 고사한 후 작은할머니 당산만 모셨다. 할아버지 당산은 이웃 마을인 장성동마을에서 제를 모셨다. 현재는 당산제가 중단된 상태이며, 개인이 설날추석에 간단히 제를 모시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용서마을 당산은 두 군데에 있다. 마을 입구의 ‘작은할머니 당산’은 팽나무이고, 마을 뒤편에 있는 ‘큰할머니 당산’은 소나무이다.

[절차]

줄포리 용서 당산제 는 음력 정월 열 나흗날 한밤중에 모셨다.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음력 이월 초하룻날로 연기한다. 제관은 깨끗한 사람으로 정하여 선출하여 모셨다. 비용은 집집마다 쌀이나 돈을 추렴했다. 제물은 돼지머리를 비롯하여 삼실과, 나물, 명태, 밥, 시루떡 등을 준비하여 제를 모셨다. 제기는 제를 모실 때마다 새로 장만했다. 축문을 읽고 소지를 올리면서 축원하고, 당산 주변에 헌식하며 제를 모셨다.

[축문]

당산제가 중단되었기에 축문은 따로 입수하지 못했다.

[부대 행사]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용서마을에서는 당산제가 끝나면 참여한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음복을 했다.

[현황]

줄포리 용서 당산제 는 주변 마을인 후촌마을과 함께 지냈다. 용서마을줄다리기를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저녁에 후촌·서빈·본동 마을과 함께 장성동으로 가서 했다. 장성동에서 줄을 만들어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한 다음에, 다시 남녀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진행하였다. 여자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여 여자 편이 이기도록 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장성동마을이 중심이 되어 장성동 당산나무에 ‘당산 옷 입히기’를 한다. 그리고 용서마을 사람들은 마을로 돌아와 당산제를 모셨다. 이렇게 줄포리 여러 마을은 당산제와 줄다리기를 마을 연합으로 한 것이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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