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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158
한자 嘉五里
영어공식명칭 Gao-ri
이칭/별칭 상서면,법정리,면 소재지,두포천,퇴왜지,저가,우덕,동림,양산,원촌,김회신,김구,동림서원,서원지,감교초등학교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가오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회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가오리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4.53㎢
가구수 277가구
인구[남/여] 510명[남 265명/여 245명]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가오리(嘉五里)의 행정리인 가오마을은 논으로 둘러싸인 들판 한가운데 조그맣게 자리한 곳으로 지명과 관련한 유래는 불분명하다. 상서면 소재지인 가오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은 국도 제23호선이 지나가는 저기(猪基)마을이다. 우리말로 ‘되야터·되야지터·돼지터’ 등으로 불리는데, 마을의 지형이 돼지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호남 지방으로 쳐들어온 왜군을 상대로 이 지역 출신 의병장 이유(李瑜)청등치에서 전투를 펼칠 때, 그가 이끄는 의병이 저기마을에서 큰 진을 치고 싸워 왜군을 물리친 곳, 곧 ‘퇴왜지(退倭地)’에서 유래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저기마을 남쪽에 있는 우덕(優德)마을은 원래 이웃 마을보다 늦게 새터로 출발하였지만 큰 길가에 있어 마을의 세가 점점 커지자 일제 강점기 때 우덕이라 이름 붙여졌다. 우덕마을 서쪽의 변산 골짜기에 동림(東林)마을과 양산(陽山)마을, 원촌(院村)이 있다. 동림마을은 골짜기 안쪽에 있어서 안골 또는 내동이라 부르고, 양산마을은 골짜기 입구 쪽에 있어서 외동이라고도 부른다. 원촌에는 조선 후기인 1694년(숙종 20) 동림서원(東林書院)이 세워져서 김구(金坵)의 8세손인 김회신(金懷愼)과 『반계수록(磻溪隧錄)』의 저자 유형원(柳馨遠) 등을 배향하였다. 동림서원은 1868년(고종 3)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 형성된 마을이라 ‘원촌’이라고 부른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상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서면의 도산리, 저기리, 우덕동, 내동, 원촌리, 외동리, 장전리, 지석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상서면 가오리로 개설하였다.

[자연환경]

김제에서 부안을 거쳐 고창으로 이어지는 국도 제23호선이 마을 한가운데로 지나간다. 국도 제23호선을 중심으로 서쪽은 변산반도 국립 공원의 산자락에 걸쳐 있고, 동쪽에는 농경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농경지 사이로 두포천(斗浦川)이 흐르면서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두포천은 주산면에서 출발하여 상서면을 지나 서해안으로 들어가는 수로로, 주상천으로도 불린다.

[현황]

가오리의 동쪽은 주산면 백석리돈계리, 남쪽과 서쪽, 북쪽은 상서면감교리청림리, 통정리, 용서리와 접한다. 면적은 4.53㎢이며, 이 중 밭이 0.49㎢, 논 1.53㎢, 임야 1.80㎢ 등이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가오리·저기리·우덕리·양산리·동림리의 5개 행정리에 277가구, 510명[남 265명/여 24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저기마을에 공공시설인 상서면 사무소를 비롯하여 상서파출소, 상서우체국, 개암 작은 도서관 등이 있다.

교육 기관으로 1953년 4월 1일 개교한 우덕초등학교가 우덕마을에 있다. 우덕초등학교는 1999년 12월 감교초등학교를 통합하였으나 인구가 감소하면서 2021년 2월 현재 학생 수는 28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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