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당리 경주 김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720
한자 冠堂里 慶州 金氏 世居地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문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에 있는 경주 김씨 세거지.

[개설]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경주 김씨는 김수준(金守俊)이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 시기에 보령 지역으로 내려와 거주하면서 입향하였다. 이후 지금까지 후손들이 묘지·신도비(神道碑)·재실(齋室) 등을 관리하면서 거주하고 있다.

[명칭 유래]

관당리(冠堂里)는 갓굴의 한자식 표현인 관동(冠洞)과 당재[갓굴 북쪽에 자리한 마을]의 한자식 이름인 당현리(堂峴里)에서 따온 명칭이다.

[현황]

예전에는 관당3리 간드리마을경주 김씨의 문중들이 많이 모여 살았지만, 현재는 외지인들이 펜션 사업 등으로 유입되면서 집성촌 인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입향유래]

조선 개국공신(開國功臣)인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김균(金稛)의 7대손인 통덕랑(通德郞) 김수준이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보령 지역으로 피난하면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관련유적]

관련 유적으로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은산골에 김수준의 묘지가 있다. 묘지 주변에는 김수준의 신도비가 있다. 앞면에는 ‘경주김공수준신도비(慶州金公守俊神道碑)’라고 씌어 있고, 뒷면에는 경주 김씨의 연원을 비롯한 김수준의 입향 경위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김수준의 신도비는 1993년 12대손인 종회장 김내경(金乃經) 등의 후손이 건립하였다. 묘지 인근에는 경주 김씨의 재실인 은산재(銀山齋)가 있다. 재실의 이름을 ‘은산재’라고 한 것은 재실이 자리한 ‘은산골’이라는 지명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수준 후손들의 묘소는 벼락재[관당리 양알에서 죽청리로 통하는 고개인 ‘북문재’를 일컫는 말] 아래 윗말골에 주로 형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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