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169
한자 武昌浦漁村體驗-
영어공식명칭 Fishing Village Experience Tour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열린바다2길 46[관당리 888-57]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원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체험마을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에 있는 어촌 체험 마을.

[개설]

무창포어촌 체험마을은 어촌에 개설된 체험마을로, 물이 빠지면 장화를 신고 들어가 조개를 캐고, 해변에서 갈매기와 함께 뛰어 놀며 바다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명칭 유래]

‘무창포어촌체험마을’의 명칭은 체험마을이 자리한 ‘무창포 어촌’의 명칭을 그대로 딴 것이고, 무창포 어촌은 어촌이 자리한 ‘무창포’ 지명을 그대로 딴 것이다. 무창포관당리의 포구마을과 해수욕장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무창포에는 조선 시대에 해창(海倉)이 있었다. 주민들은 무챙이라고 부른다.

[형성 및 변천]

무창포는 일제 강점기에 방파제를 막아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무창포어촌체험마을은 2010년대 들어서 지정되었으며, 인근의 무창포해수욕장의 발전에 힘입어서 함께 발전하여 오고 있다.

[자연환경]

무창포어촌체험마을이 있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의 무창포 어촌 일대는 바다가 육지 안쪽으로 움푹 파인 내만(內灣) 형태로 되어 있어 천연의 포구를 이루고 있다.

무창포 어촌의 남쪽 인근 해안에는 해안사빈에 들어선 무창포해수욕장이 있고, 무창포무창포해수욕장의 배후에는 해안사구가 각각 발달하였다. 무창포해수욕장의 앞에는 ‘관당리갯벌’로 불리는 전형적인 갯벌도 발달하였다.

무창포사구는 길이 500m, 폭 100m의 규모로,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해안사구와 해안사빈 사이에는 축대를 쌓고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바다 쪽 급경사지에는 해송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무창포해수욕장사구는 길이 1,200m, 폭 70m의 규모로, 외해로 열려 있어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바다로 통하는 두 개의 골짜기 입구에 해안사구가 형성되었고, 골짜기는 모두 논으로 개간되었다. 1990년대에 구획정리와 함께 개발이 진행되면서 해안사구가 훼손되기 시작하였고, 훼손을 막기 위하여 경사진 구조물을 설치하여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퇴적되긴 하지만, 육지의 모래가 바다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

관당리 갯벌은 역질갯벌과 사질갯벌이 반반씩 나타난다. 특히 밀물과 썰물의 차가 최대가 되는 사리 때는 갯벌 바닥이 드러난다.

[현황]

무창포어촌체험마을의 프로그램은 시기에 따라 다소 가변적이어서 바지락캐기 체험[1~12월]. 굴따기 체험[11월~2월], 해변관광열차 체험[4~10월], 맨손고기잡이 체험[4~10월], 신비의 바닷길 체험[1~12월] 등으로 구성되기도 하고, 독살[3~5월], 신비의 바닷길 체험[1~12월], 해상가두리낚시 체험[4~10월] 등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무창포어촌체험마을 주변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많은데, 인근의 무창포해수욕장, 무창포수산시장을 비롯하여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대천해수욕장, 독산해수욕장, 죽도 상화원 등이 대표적이다.

보령9경 더하기의 제5경인 무창포해수욕장은 여름은 물론이고 사계절 내내 가족단위 휴양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무창포해수욕장은 한 달에 4~5차례씩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나타나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신비의 바닷길은 매월 사리 때 1~2일간 무창포해수욕장의 백사장에서 석대도까지 1.5㎞에 이르는 구간의 관당리갯벌에서 열리는데, 바다가 갈라지면 관광객들은 갯벌 위를 걸으면서 굴, 바지락, 해삼, 소라, 낙지 등을 맨손으로 건져 올린다. 관당리갯벌에서는 돌을 쌓아 바닷물이 들고 나는 것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독살도 구경할 수 있다. 무창포전망대에 오르면,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장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일몰 전경이 서해 바다를 검붉게 타들어 가게 하는 듯한 무창포 낙조도 볼 수 있다.

인근의 무창포수산시장에는 각종 활어와 해산물이 많으며, 봄에는 쭈꾸미와 활어, 가을에는 대하와 전어가 풍부하다. ‘무창포 대하’는 인근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조선 시대에 진상품으로 꼽힐만큼 유명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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