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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878
한자 保寧水芙里龜趺-螭首
이칭/별칭 단원사,탑비,귀부,이수,팔각원당형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만수로 582-11[수부리 산16-6]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정성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4년 9월 1일연표보기 -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현 소재지 단원사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만수로 582-11[수부리 산16-6]지도보기
성격 탑비
재질 화강암
소유자 단원사
관리자 단원사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 단원사에 있는 고려 전기에 제작된 탑비의 귀부와 이수.

[개설]

단원사(團圓寺)는 통일 신라 말기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구룡사(九龍寺)였다고 전하나,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이나 자료는 없다. 단원사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폐사지로 남아 있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37년경 웅천~부여 간 도로가 폐사지를 지나 신설되자 도로 아래에 사찰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단원사 경내에 있는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保寧水芙里龜趺-螭首)는 1974년 9월 1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탑비의 귀부[받침돌]는 4각의 반석(盤石) 위에 용머리를 하고 있는 거북을 조성하였다. 이수[머릿돌]는 장방형 육면체로 여의주를 두고 구룡(九龍)이 상쟁(相爭)하는 조각이며, 정면 중앙에는 전자(田字)형의 비액(碑額)이 있으나 글씨는 없다.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는 구룡사 터였다고 전하는 주변 산기슭에서 이전해 온 것이다.

[위치]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단원사 경내에 있다.

[형태]

귀부는 평면 방형의 지대석과 귀부를 동일석으로 치석(治石)[돌을 다듬음]하여 조성하였다. 귀부의 머리는 용두로서 눈을 부릅떠 정면을 직시하고 있다. 목덜미에는 세로의 줄무늬가 목 전면에 있으며, 줄무늬 사이에 U자형의 주름이 규칙적으로 흘러내린다. 용두의 눈은 부릅떴으며 눈꼬리가 길게 치켜올라가 강인한 인상을 풍긴다. 코는 들려서 콧구멍이 깊게 표현되고, 중첩된 주름이 미간까지 이어져 있다. 일반적인 귀부와는 달리 입을 꽉 다물어 여의주를 물지 않은 형태이며, 길게 찢어진 입 가장자리에는 어룡(魚龍)의 깃과 같은 물갈퀴 형상이 조각되었다. 가장자리 뒤로 휘날리는 갈기를 서기(瑞氣)가 뻗어가듯이 표현하였다.

귀갑문(龜甲文)[육각형이 연속하여 펼쳐진 기하학무늬의 일종]은 1조의 돋을대를 활용하여 육각형으로 구획한 후, 다시 육각형 안에 6각의 선을 돌려 조성하였다. 2중의 귀갑문이 정연하게 조각된 귀갑은 중앙부로 가면서 한 단 높게 와운문(渦雲文)[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무늬]을 첨가하여 장식하였다.

앞발은 귀갑 전면 양단에 가지런히 두었으며, 힘차게 누르고 있는 발톱은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비좌(碑座) 부분은 파손되어 있었으나 비신(碑身)을 올리면서 일부 수리하여 복원하였다. 비좌 주변은 복련(覆蓮)[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을 정연하게 조각하였다. 비좌 위에는 1999년 조성하여 새롭게 올려놓은 비신이 있다.

비신 위의 이수는 정면 직사각형이며, 이수 맨 아래에는 연판문(蓮瓣文)[쳐놓은 연꽃잎 모양을 도안화한 무늬]을 두르고 연판문 아래 층급의 단을 두어 비신 위에 올려 두었다. 이수 전면에는 정중앙에 전액(篆額)[전자체(篆字體)로 쓴 현판이나 비갈(碑碣)의 제액(題額)]을 두고 전액 내부를 전자형으로 4등분하였으나 글씨는 새겨져 있지 않다. 전액을 중심으로 각 측면에 구름 사이를 뚫고 힘차게 움직이는 용을 조각하였다. 이수의 측면과 후면에도 용 조각이 역동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는 탑비의 비신이 남아 있지 않아 탑비의 주인공을 알 수 없다. 귀부와 이수는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驪州 高達寺址 元宗大師塔碑)와 유사한 모습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보다 간략화되고 형식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가 건립되는 975년(광종 26) 이후 고려 전기에 조성된 탑비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고려 시대 국사나 왕사의 자리에 오른 후 입적한 고승의 경우 승탑과 탑비를 세우는 전통이 있는 점으로 보았을 때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 역시 고려 시대 왕사나 국사를 역임한 고승의 탑비였던 것으로 보인다.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 옆에는 승탑의 옥개석과 기단부가 남아 있다. 현존하는 부재(部材)로 통해 보면 고려 전기 유행하였던 전형적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옥개석이 팔각형으로 이루어진 모양] 승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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